FOLKLORE & SUPERSTITIONS

사라진 미역국

5분 읽기 · a Lia Books orig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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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김을 올리며 빛나는 미역국 한 그릇

1. 2008년, 새벽

새벽의 어두운 병실, 냄비를 싼 보자기 매듭을 푸는 할머니의 손

새벽 네 시 반에 병실 문이 열렸다. 서연은 태어난 지 여섯 시간이 됐고, 그중 다섯 시간을 자는 데 썼다.

할머니는 인사보다 보자기를 먼저 풀었다. 매듭 두 개, 냄비 하나, 국자 하나. 소독약 냄새만 있던 방에 참기름 냄새가 끼어들었다.

"엄마. 여기 병원이야."

"그래서 보자기에 쌌지."

"밥 나와. 국도 나오고."

"병원 국이 국이냐."

"이 시간에 뭘 타고 왔어."

"첫차."

엄마는 첫차 시간을 따져 보려다 그만두었다. 창밖은 아직 깜깜했다.

뚜껑이 열리고 김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검푸른 미역이 국물 속에서 흔들렸다.

"첫국밥은 집에서 끓여야지. 미역도 길게 넣었다. 꺾는 게 아니라더라."

"……나 미역국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지금부터 좋아하게 된다. 삼칠일 내내 먹을 거니까."

엄마가 뭐라고 더 하려는데 그릇은 이미 손에 들려 있었다.

"삼신할매 몫은 먼저 떠놓고 왔다. 흰밥에 국 한 그릇. 너 순산한 값은 해야지."

"아직도 그런 거 차려?"

"믿고 말고가 어딨어. 받은 게 있으면 갚는 거다."

할머니가 국자로 국물을 한 번 더 떠 부었다.

"옛날 사람들이 그러는데, 고래도 새끼를 낳으면 미역부터 뜯어 먹는단다. 바닷속에서 지가 알아서 몸을 고친다는 거야. 사람이 그걸 보고 배웠다지."

"고래가?"

"고래가."

"그걸 누가 봤대?"

"군말 말고 먹어. 식는다."

엄마는 웃으면서 첫 술을 떴다. 뜨거운 것이 목을 지나 내려갔다. 별로 안 좋아한다던 국이 두 술, 세 술 줄었다. 할머니가 냄비 뚜껑을 도로 덮었다.

아기 침대에서 서연이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울음이 아니라 하품이었다. 속싸개 밖으로 빠져나온 주먹이 살구만 했다.

그날 서연이 처음 맡은 세상의 냄새는, 소독약과 참기름과 바다였다.

2. 2016년, 생일 아침

나무 식탁에 해마다 남은 그릇 자국들을 지나, 엄마 손이 미역국 그릇을 아이의 두 손 쪽으로 밀어 보낸다

"또 미역국이야?"

여덟 살 서연이 숟가락을 든 채 말했다. 어제 급식에도 미역국이 나왔다. 게다가 생일이었다.

냉장고에는 오후에 자를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반 친구 셋이 오기로 했다. 서연이 아는 생일은 그런 것이었다. 초를 불고, 포장을 뜯고, 달콤한 것만 먹는 날. 미역국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생일에 미역국 안 먹으면 서운하지." 엄마가 말했다.

"누가 서운한데?"

"내가."

"내 생일인데?"

"그러니까 내가 서운하지."

어딘가 이상한데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연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서연 앞의 그릇을 슬쩍 자기 쪽으로 당기더니, 한 술 떠먹고 도로 밀어놓았다.

"이거 원래 네 국 아니야. 내 국이야."

"뭐?"

"네가 태어난 날, 엄마는 이걸 하루 세 번씩 한 달을 먹었어. 생일마다 한 그릇씩 너한테 나눠주는 거야."

"그럼 안 나눠줘도 되잖아."

"낳느라 고생한 사람이 먹던 걸 같이 먹어야, 태어난 날이 완성되거든."

"그럼 엄마 생일엔?"

"그건 외할머니 국이지. 외할머니가 나 낳고 드시던 거."

"외할머니 생일엔?"

"증조외할머니 국."

"그 위에는?"

"끝이 없어. 먹다 보면 알게 돼."

"……언제까지 먹는데?"

"죽을 때까지."

"엄마도 어릴 때 이런 거 물어봤어?"

"물어봤지. 딱 네 나이에, 지금 네 표정으로."

"외할머니는 뭐라고 했는데?"

"먹다 보면 알게 된다더라."

여덟 살은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숟가락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리는 미역 줄기를 붙잡으며 생각했다. 그릇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들어 있다니, 이상한 생일이다.

3. 2026년, 수능 전날

좋아하는 반찬이 차려진 저녁상, 국그릇 자리에는 물컵만 서 있다

저녁 뉴스에서 내일 아침 출근길이 한 시간 늦춰진다고 했다.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전국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를 멈춘다고도 했다. 화면 속에서는 어느 학교 정문에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기온이 뚝 떨어지겠다는 예보도 나왔다. 나라가 통째로 숨을 죽이는 시험이 열두 시간 뒤였다.

저녁상이 이상했다.

돈가스가 있었다. 계란말이도. 서연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놓은 상이었다. 국그릇 자리가 비어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꼬박꼬박 올라오던 국이 하필 오늘 없었다.

"엄마. 미역국은?"

싱크대 물소리가 멎었다.

"오늘은 없어."

"아침에 봤는데."

"오늘은 없어."

짐작은 갔다. 그래도 물었다.

"왜."

"너 내일 시험이잖아. 미역이 얼마나 미끄러운데. 시험 전날 먹는 거 아니야."

서연은 웃음이 났다. 십팔 년을 지겨워한 국이, 처음으로 먹고 싶어진 날 압수당했다.

찬장을 열었다. 미역 봉지 자리를 다시마 봉지가 차지했다. 냉장고 손잡이를 잡았다.

"거기도 없어."

대신 식탁 한가운데 찹쌀떡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엿도 한 봉지. 낮에 도착한 할머니 택배였다. 저녁엔 전화가 왔다.

"떡 먹었냐."

"……네."

"엿도."

"그건 좀 이따가—"

"붙어라."

끊겼다.

아홉 시가 되기 전에 텔레비전이 꺼졌다. 서연은 가방 앞주머니에서 수험표를 꺼내 보고, 도로 넣고, 다시 꺼내 보았다. 거실 불이 여느 날보다 먼저 나갔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그날 처음 들렸다. 아무도 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집 전체가 일찍 자는 척을 했다. 서연도 자정 전에 누웠다. 잠은 한참 뒤에 왔다.

다음 날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에 부엌에 불이 켜져 있었다. 국 없는 밥상이 조용히 지나갔다. 밥은 반 공기에서 멈췄다.

예보대로 추운 날이었다. 엄마가 목도리를 한 바퀴 더 감아 주었다. 턱까지 덮였다. 가방 옆주머니가 불룩했다. 어제 그 찹쌀떡이었다. 운동화 끈을 두 번 묶었다.

서연은 도시락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등 뒤에서 엄마가 말했다.

"끝나고 와. 끓여놓을게."

시험이 끝난 저녁

김이 오르는 미역국 그릇을 감싼 두 손, 그 옆에 김이 서려 뿌예진 안경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알았다. 냄새가 복도 끝까지 나왔다. 걸을수록 진해졌다.

현관에 들어서니 김치냉장고 맨 아래 칸이 열려 있었다. 뜯긴 미역 봉지가 개수대 옆에 있었고, 국은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어땠어?"

"몰라. 국이나 줘."

엄마가 그릇을 내려놓았다. 서연은 두 손으로 받아 감쌌다. 김이 올라와 안경이 뿌예졌다. 안경을 벗고 첫 술을 떴다. 뜨거운 것이 목을 지나 내려갔다. 열여덟 해 동안 지겨웠고 딱 하루 없어서 서운했던 맛이었다. 건더기가 평소보다 많았다.

미역 한 줄기가 숟가락에서 미끄러졌다. 서연은 도로 건져 먹었다. 이제는 미끄러져도 되는 미역이었다.

"다음 생일에도 이거 나와?"

"그건 내 국이라니까."

빈 그릇에 국자가 한 번 더 다녀갔다.

결과는 다음 달에 나온다. 국은 그날 저녁에 돌아왔다.

전화가 울렸다. 서연은 숟가락을 문 채 받았다.

"먹었냐."

"……먹고 있어요."

"됐다."


이야기 밖에서

미역국은 미역을 참기름에 볶아 소고기나 조개를 넣어 끓이는 국이다. 한국인은 이 국을 태어난 날 처음 만나고, 그 뒤로 생일마다 다시 만난다.

산모가 아이를 낳고 처음 받는 상을 첫국밥이라 불렀다. 흰쌀밥에 미역국. 상을 차릴 때는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미 몫을 먼저 떠 놓았고, 스무하루, 곧 삼칠일 동안 미역국이 산모 곁에 머물렀다.

생일 미역국은 그 첫 상의 재현이다. 내가 태어난 날 어머니가 먹던 국을 매년 그 날짜에 다시 먹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는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미역국은 먹었어?"라고 안부를 묻는다.

시험 앞에서는 규칙이 뒤집힌다. 한국어에서는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미끄러졌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매끄러운 미역은 시험 전에 상에서 사라지고, 대신 붙는 것들이 올라온다. 찹쌀떡과 엿이다. 합격하는 것도 들러붙는 것도 한국어로는 같은 말, "붙다"이기 때문이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말을 "미역국 먹었다"라고 돌려 말하기도 한다.

이 국의 기원으로 널리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 먹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배웠다는 것. 당나라 문헌 『초학기』의 기록이라는 설명이 늘 따라붙는다. 그런데 공개된 원문 서른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져 본 사람들이 있다. 그 대목은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의 나이는 천 년이라고들 한다. 출처는 흐릿한데 이야기는 계속 전해진다 — 어쩌면 그게 이 국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출처